진짜 다행이다

2025. 1. 27. 04:23𝑫𝑨𝑰𝑳𝒀

같은 입시사정관제 면접을 들어왔던 대학교 동기 두 명이 있었다. 나를 포함해 셋이 성격이 거의 달랐는데, 한 명은 드라마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범생의 정석이었다. 교수님의 수업이 "감동적"이었고 "즐거웠다"라고 말하는 아이. 한 명은 뭐랄까, 애니메이션 슈퍼갤즈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발랄하고 노는 것 좋아하는 친구. 나는 아마, 그 중간 정도? 좋게 말하면 적당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이도 저도 아닌 정도. 어쨌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셋이 같은 면접실에서 면접을 봤고, 우린 신입생환영회에서 처음 친구가 되었다.

모범적이었던 친구는 술자리는 커녕 학과 행사에도 거의 얼굴을 내비치는 법이 없었다. 물론 성실히 참여는 하지만, 거의 마지노선에 간당간당한 수준의 참여율이었다. 당연히 우리 둘은 노는 걸 좋아했으니 자주 참석하고, 그 자리를 즐겼다. 발랄한 친구는 간간히 수업에도 빼먹었고, 글 쓰는 게 사실 엄청 재밌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언젠가 그 애가, 중견 규모의 플랫폼에 웹소설을 연재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때 나는 완전히 축하하지는 못했던 기억이 난다. 놀기 좋아하는 걸 차치하고, 나는 그 애보다 훨씬 더 글을 잘 쓰는 것 같은데, 왜 내겐 그런 기회가 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어린 마음에 '운이 좋네'라고 생각하면서,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하는 내가 한편으로는 역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하드 3관 출시 초기에 같이 트라이했던 공대에서 늦게나마 클리어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적 있다. 일전에 말했던 지인 7인팟 공대로, 나를 제외한 모두가 같은 노력 끝에 클리어했다는 후기를 전해왔다. 그때도 솔직히 말하면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그 자리엔 내가 있었을까.

물론 언제나 나는, 나를 갉아먹는 것들에 대해 빠른 완치를 자랑하기 때문에, 그런 내면의 열등감을 인지하기도 전에 방어기제를 발동하기 바빴었다. 그래서 자세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뚜껑을 닫았었는데.

그리고 다시 올해.
나로 인해 시간을 지체하고 있다는 사실에 사로잡혀 숨이 막혀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던 지난 이틀동안에.
나는 나약한 사람을 싫어해. 내가 나약하면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해 져. 신세 지고 싶지 않아. 나때문에, 나때문에,
그런 생각에 고개를 숙이고 호흡을 삼켰던 지난 이틀.

그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게 된 건 내가 성장했기 때문이 아님을 느낀다. 그냥, 그 사람들을 '나를 갉아먹는 것들'로 상정하기엔 너무 소중한 사람들이어서. 상대방은 어떨지 몰라도 나한테는, 너무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들이었어서 진심으로 기뻐하게 돼. 그리고 한편으론 이제야... 마음이 좀 편해서. 이젠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