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지 않는 자들의 낙원

2025. 1. 26. 03:00𝑫𝑨𝑰𝑳𝒀

카멘 3관 처음 할 때가 생각난다. 통디에서 괜찮은 사람들에게 컨택해서 서로 인사도 하고, 합 맞추기라면서 따로 숙제도 하고 그랬지. 나를 제외한 나머지 지인팟으로 이루어진 공대에서 이미 숙제가 된 레이드를 함께 할 때까지만 해도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도 못했었다.

그리고 대망의 카멘.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패턴, 내 미숙함으로 인해 갈려가는 사람들의 시간과 체력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끝내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끼리 나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피해망상까지 도지기 시작할 무렵, 이제야 지형파괴를 간간히 보는 진도였지만 나는 공대를 나왔다. 3관 트라이 시작 후 사흘정도 뒤의 일이었다.

그리고 초월을 어느정도 찍었을 무렵인가? 길드 사람들과 함께 카멘 하드를 트라이했고 클리어했다. 노말에서 쌓아왔던 숙련도 덕분에 조금씩 진도가 나가는 것도 있었지만,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들 덕분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과 에키드나, 베히모스까지 클리어했다. 그때까지 레이드 난이도가 쉬웠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냥, 그 산을 넘었으니 이제 그때의 공포도 어느 정도 지워졌다고 생각했다.

2막 노말을 트라이할 때 145줄에서 엄청 막혔던 적이 있다. 그때 다시 익숙한 공포를 느꼈다. 내가 못해서, 나만 잘했으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여기에 있었으면 이 파티는 이미 클리어했을 수도 있다. 자책감이 들어서 그만 포기하겠다고 했을 때 공팟 사람들이 안 보내줘서(?) 반쯤 울면서 트라이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그 파티에서 나는 처음으로 노말 아브렐슈드를 클리어했다.

하브렐슈드 트라이할 때도... 그때도 이것저것 많이 어려웠다. 심지어 처음 하는 기믹 때문에 후반부에 꽉 찬 리트를 할 때마다 멘탈이 갈려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그냥, 그냥. 그냥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내가 잘할 거라고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실제로도 그랬고.

3막에 와서 나는 다시, 내가 아직 이겨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래, 포기가 익숙해지면 그냥 이렇게 되는 거다. 그때 카멘처럼 나는 또 포기했다. 다른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는데, 나는 포기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똑같이 벽에 부딪혔다. '네가 편한 대로 해'라는 선택지가 생기자마자 도망쳤다. 나는 지금까지 뭘 믿고 나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었냐 하면 글쎄, 그렇지만 여기가 이미 내게 지옥이니까 도망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