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주말 콧바람 쐬고 왔던 날

2024. 11. 10. 10:06𝑫𝑨𝑰𝑳𝒀

손내향미는 서면 전포동에 위치한 맛집 중에서도, 별도의 예약을 통해서만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수용 인원이 10명도 되지 않다 보니, 거의 한 달치 예약이 가득 차있는 곳이라고 했다. 떡갈비 솥밥을 전문 메뉴로 하는 곳인데, 전국 팔도에서 맛있는 쌀을 가져다 밥을 짓고 정성껏 만든 떡갈비를 맛볼 수 있다.

원래 나는 이런 맛집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친구가 2인 테이블 예약을 시도하다 1인 테이블 예약에 성공한 덕에 나에게 예약을 양도해 주었다. 그래서 눈코뜰새 없이 바쁜 11월이지만, 그래도 기분 전환 겸 오랜만에 전포 나들이를 시도했다.

오랜만에 마을버스를 탔더니 내릴 곳을 늦게 확인한 바람에 한 정거장 뒤에 내려버렸다. 조급한 마음으로 혹시나 예약이 취소되진 않을까 매장에 전화를 해서 10분 안에 방문하겠다고 말을 전했다. 근데 그래도 내가 이럴 것까지 예측해서 일찍 나왔던 덕분에 정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식당 안에는 고즈넉한 밥냄새와 달큰한 고기향이 가득했다. 솥 안에는 차분하게 쌀이 익어가고 있었다. 천천히 흘러들어오는 밥 냄새를 느끼면서 약 20분의 시간을 기다리면, 인내한 만큼 맛있는 밥을 맛볼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밥이 제일 맛있었다. 밤샘으로 온몸이 피로에 절어있는 기분이었는데, 따뜻하고 고슬고슬한 밥 한 술을 먹으니 그제서야 힘이 도는 것 같았다.

여긴 콜라나 사이다 같은 탄산 음료는 없고, 하이볼과 매실 에이드인가? 그런 음료 두 종류가 있다. 에이드도 먹을 만하겠지만 피로를 좀 쫓고 싶기도 했고, 라임을 좋아해서 고민 없이 하이볼 한 잔을 주문했다. 식전/식후에 과일 하나를 머금고 음료를 마시면 그 풍미가 더해진다고 알려주셨다. 개인적으로 음료가 정말 맛있었다. 테이크 아웃이 가능하다면 한 잔 더 마시고 싶을 정도로.

밥과 함께 떡갈비를 조금씩 먹다가, 속까지 레스팅된 떡갈비를 솥밥 안에 넣어준다. 솥밥 안에는 아까 먹었던 그 밥과 곤드레, 10년 숙성된 간장, 명란 버터가 세팅되어 있다. 주걱으로 떡갈비를 정성스럽게 밥과 함께 비벼주면, 손내향미의 메인 메뉴인 '떡갈비 솥밥'이 완성된다. 생각보다 떡갈비의 양이 엄청 많다. 밥도 꽤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떡갈비와 섞으니 솥이 가득 찰 정도였다.

오랜만에 정성스럽게, 맛있게 차려진 밥을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예약이 어려운 것도 어렵지만, 사실 두 번은 안 갈 것 같기도 하고... 부산에 살면서 한 번은 가봄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떡갈비가 내 입맛에 너무 달고 좀 느끼한 감이 있었기 때문에, 하이볼은 반드시 드셔보실 것을 권하는 바. 새콤한 맛을 사랑하는 나에게 화이트와인와 라임의 풍미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식후 어딜 가볼까 고민하다가 전부터 얘기 들었던 르라보 매장에 구경을 갔다. 근데 향수는 너무 비싸... 월급날 플렉스도 생각해 봤는데 세상에서 나만큼 향수 필요없는 사람도 없을 것 같아서 바로 백스텝함...

그리고 전포에서 집까지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어왔다. 아 오랜만에 1시간이나 걸었더니 힘들어 죽겠음... 집 와서 로아 좀 하다가 18시 되자마자 뻗어버렸다. 그래서 이미 하루 지난 아침 10시에 쓰는 일기지만. 손내향미에서 먹었던 떡갈비솥밥은 남은 음식을 주먹밥으로 만들어서 준다. 그걸 오늘 아침에 먹으니, 손내향미 두 번 갔다온 기분 들어서 괜히 좋았다. 전자렌지에 데우니까 그 맛있었던 밥의 감동이 줄어든 건 아쉽지만 그래도 별 네 개 이상!